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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과정을 시작하며

독일에 온지 2년하고 2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 여기서 석사로서 4학기를 보냈다. 세미나들과 포어레숭(Vorlesung)들에 참석했고, 수차례 구두시험을 치르고 하우스아르바이트를 제출했다.   3학기 동안은 석사논문을 쓰기 위해 필요한 학점들을 모았고, 지난 학기에는 마침내 석사논문을 썼다.  논문은 "바이마르 공화국 당시 보수혁명 지식인들의 근대상"이라는 주제로 작성했다.  애초에 내가 단순히 흥미로서의 역사가 아닌 역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철학사와 프랑스 혁명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중간 중간 관심사가 미시적으론 바뀌긴 했지만 결국 돌고 돌아 제자리로 왔다는 생각에 묘한 기분을 감출 수 없다. 보수혁명은 궁극적으로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보수 지식인들의 지적 응전이었기 때문이다. 때때로는 의식하지 못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은 나 스스로가 하나의 거대한 문제의식을 따라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해 온 것 같다. 이제 내일부터는 이 문제의식을 더 확장시켜 박사 과정을 시작하게 된다.  8월 중순에 석사논문을 쓰고 한동안 반쯤은 의도적으로, 반쯤은 강제로 휴식기를 보냈다. 석사논문을 쓰면서 심신이 많이 지쳐서 일부러 휴식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지만, 석사논문 평가가 완료되지 않은 시점에서 다음 과정에 집중하기 쉽지 않았던 것도 맞다. 여기저기 여행도 많이 다녀왔고.  생각해보면, 박사 과정은 내가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꿈구기 시작한 이후로 줄곧 생각해왔던 단계였다. 처음엔 미국에서 할거라 생각했었고, 중간에는 프랑스에서 할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학자로서의 정점은 늘 박사논문이라고 여겼었다. 아마 내가 접한 많은 대가들의 저작들이 그들의 박사논문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 생각은 대학원에 오고나서 많이 바뀌었다. 지금은 박사논문이 학자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이전에 거쳐야 하는 일종의 검증 혹은 시험대라는 것을 여실히 느끼고 있다. 박사논문을 잘못 쓰게 될 경우 학자...

한병철의 "아름다음의 구원"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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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철의  Die Errettung des Schönen (아름다움의 구원)을 읽은 적이 있었다. 책을 사고나서 다음 날 오후에 다 읽었으니, 하루 쯤 걸린 셈이다. 이 책은 그만큼 짧다. 각주를 제외한 분량이 100쪽이 안되고, 사진에서 보다시피 여백이나 줄의 간격도 넓다.  물론 그것이 내용의 빈약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름다움의 구원'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한병철은 이 책에서 (한병철에 따르면) 오늘날 위기에 빠진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은 오늘날 어찌해서 위기에 빠진 것일까? 아니, 전작들에서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던 저자는 왜 아름다움에 대해서 논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한병철이 보기에 긍정성(Positivität), 인터넷, 그리고 주체와 같이 오늘날의 사회를 특징짓는 요인들이 점점 아름다움으로 하여금 설자리를 잃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즉, 오늘날의 본질적인 특징들이 아름다움을 몰아내고 있는 것인데,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움에 관한 한병철의 논의는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적이다.  책은 '매끄러움(das Glatte)'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제프 쿤스(Jeff Koons)의 조각, 스마트폰, 그리고 브라질리언 왁싱과 같이 오늘날 인기를 얻고 있는 것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한병철은 매끄러움에서 찾는다. 그러나 저자는 단순히 겉모습에서 드러나는 매끄러움의 속성을 밝히는데 집중하지는 않는다. 한병철이 보기에 오늘날 매끄러움은 겉모습뿐만 아니라 시대 자체를 대표하는 원리인데, 지배관계, 커뮤니케이션, 인간관계, 예술, 그리고 (궁극적으로) 소비가 '매끄러워'졌기 때문이다.  매끄러움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거슬리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매끄러운 대상을 보면 그것이 깨끗하다고 느끼고 만지고 싶어한다. 반면에 표면이 거친 것을 볼 때는 그렇지 않다. 이러한 점에서 매끄러움...

알제리 독립전쟁과 프랑스 공화주의

1년 전에 알제리의 독립전쟁과 탈식민지에 관한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까지 기초적인 지식 외에는 알지 못하던 분야라서, 관련 자료를 읽을 때마다 이론적 논의뿐만 아니라 사실관계에대해서도 내용을 쭉쭉 흡수했었던, 나름대로 알찼던 세미나였다. 주제가 주제인지라 독어 자료뿐만 아니라 프랑스어 자료와 영어 자료를 같이 보게 됐는데, 공부를 할수록 알제리의 문제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무겁게 다가왔었다. 이는 알제리 전쟁이 언급될 때 가장 많이 논의되는 주제인 고문의 문제, 그리고 (주로 프란츠 파농의 책에 대한 사르트르의 서문으로부터 기인하는) 폭력의 정당화 문제를 넘어서는 더 심각하고 본질적인 질문들을 이 전쟁이 우리에게 던져주기 때문이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1830년에 현재 알제리의 북쪽을 점령하면서부터 시작된 프랑스의 통치, 알제리 민족주의의 탄생, 민족해방전선(FLN), 그에 대항하는 OAS등의 여러 주제들이 있으나, 내가 가장 흥미를 가지고 찾아봤던 영역은 알제리의 전쟁과 프랑스 5공화국의 탄생 간에 서로 얽혀 있는 관계와 그 관계가 알제리 독립 이후 기억되고 있는 방식의 문제이다. 복잡하기도 하고, 자료를 찾아보면 사실관계를 익히는 것은 어렵지 않기 때문에 굳이 다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1958년에 샤를 드골의 집권으로 시작된 프랑스 5공화국은 알제리 전쟁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 1954년에 시작된 알제리 전쟁에 대한 4공화국의 무능력한 대응으로부터 샤를 드골이 권력을 장악할 계기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글 제목을 프랑스 5공화국이 아니라 '공화주의'라고 지은 것은 의도한 것인데, 미국의 역사가 Todd Shepard가 (내가 생각하기에) 매우 흥미로운 테제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책 The Invention of Decolonization에서 프랑스 공화주의자들이 1950년대 후반에 '탈식민지화 (decolonisation)' 개념을 '발...

위르겐 오스터함멜과 유럽의 아시아 담론

작년에 위르겐 오스터함멜(Jürgen Osterhammel)의 책 Die Entzauberung Asiens (아시아의 탈주술화)을 읽은 적이 있었다. 이 책은 18세기 초기 근대부터 19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유럽이 가지고 있던 아시아상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분석한다. 400쪽에 가까운 방대한 분량의 핵심은, 초기 계몽주의때 유럽인들에게 '고도로 발전된 문명'으로서 인식되었던 아시아가 점차 그 지위를 상실했다는 것이다(여기서 아시아는 무엇보다도 중국과 인도를 의미한다). 18세기의 아시아는 유럽의 지식인이라면 모두가 연구하고 분석해야할, 그리고 그로부터 상당부분 배워야할 문명이었으나, 18세기에서 19세기로 넘어가는 세기전환기에 이러한 인식의 극복, 혹은 단절을 일컫는 '탈주술화(Entzauberung)'가 일어났고, 결국 19세기말에 이르러서 아시아학은 일부 지역 전문가들만이 연구하는 고립된 분과가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테제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유럽인들이 시간의 경과에 따라 부정적인 아시아상을 지니게 되었다는 결론으로 환원되지는 않는다. 아시아의 탈주술화는 오히려 유럽인들의 역사관과 문명관의 변화가 가져온 산물에 더 가깝다.  "Es wäre zu oberflächlich, die Entwicklung, die zu diesem Endpunkt führte, allein als den Übergang von einem "positiven" zu einem "negativen" Asienbild zu beschreiben. Man fasst sie besser als einen langsam verlaufenden Ausgrenzungsprozess, als eine Bewegung von einem inklusiven Europazentrismus, der die Überlegenheit Europas als eine Arbeitshypoth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