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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괴팅겐 대학교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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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을 맞아 적어보는 지난 달의 모습들. 근데 한달만 있으면 벌써 올해가 끝난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는다. 시간이 너무나 빠르게 흘러간다. 요즘들어 문득 시간이 흘러가는게 außer Kontrolle geraten, 그러니까 더 이상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괴팅겐 대학교에서 이번 학기에 하는 강연. 일반적인 대학교 수업은 아니고 한 학기 동안 주제를 정하고 매번 세부 주제에 맞는 외부 학자들을 초청해서 하는 방식이다. 독일에서는 이런 방식을 Ringvorlesung이라고 한다. 이번 학기에는 내 지도교수님이 Ringvorlesung 주제를 정하시고 학자들을 섭외하는 등 전체적인 조율을 맡게 되셨다. 주제는 "Forschung im Zeitalter der Extreme"인데, "극단의 시대에서의 학술연구" 쯤으로 번역하면 맞을 것. 나치 시대에 독일 대학교와 학술 연구가 어떠했는지를 매주 다른 대학 교수들이 와서 강연한다. 이런 방식의 강연은 대개 학자로서의 전성기를 갓 보내거나 이미 보낸 학자들이 오기에 대가들의 강연을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장소는 강연이 강연인지라 일반적으로 수업이 열리는 강의실이 아니라 괴팅겐 대학교의 Aula에서 열렸다. 여긴 보통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사용하는 곳이다. 역사 강연에 딱 맞는 분위기의 건물이다. 그러나 너무 오래 전에 지어서 음향은 별로다. 마이크를 끼고 말하면 소리가 많이 울린다.   찍힌 사진은 이번 학기 첫 강연이었는데, 15분 쯤 일찍 왔더니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계셨다. 주제가 주제인지라 매주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관심이 폭발적이다. 난 괴팅겐 대학교 뿐만 아니라 독일 대학교에서 일반적인 이런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고 지금도 인상적이다. 한국에서 내가 사학과 수업 들을 때 학생도 아닌 할머니 할아버지가 와서 강의실에 앉아 있는건 상상이 안되었는데 말이다. 이걸 보다가 문득 내 모교인 고려대학교에서 학생들이 열람실에 외부인...

독일 대학원에서 들은 수업들

심심해서 (혹은 박사논문 Exposé를 쓰기 싫어서 -.-) 여태까지 괴팅겐 대학교 사학과 대학원에서 들었던 모든 수업들에 대해서 짧게나마 감상을 써보고자 한다.  모둘 Theorie (이론) 1. Globalgeschichte (지구사)  최근 서양 사학계에서 핫한 주제인 지구사를 다룬 세미나. 독일에선 현재 주로 베를린 자유대의 Sebastian Conrad 와 콘스탄츠의 Jürgen Osterhammel이 지구사를 이론적, 실천적으로 주창하고 있다. 이 세미나는 독일사와 이탈리아사를 비교사적 관점에서 연구하시는 괴팅겐 대학 교수님이 이끄셨다. Natalie Zemon Davis의 텍스트도 그렇고 Sebastian Conrad의 Geteilte Geschichte 개념도 흥미로웠다. Geteilte Geschichte라는 개념은 특히나 시사점이 많은데, 독일어에서 Geteilt가 영어의 shared라는 의미도 되지만 동시에 divided라는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민족국가를 역사 진행의 기본 단위로 놓는 전통적인 역사관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함에 있어서, 하나의 현상이 어떻게 서로 다른 주체들 간에 한편으로는 공유되는 역사인 동시에 또다른 한편으로는 따로 기억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기 적합한 개념.  발표주제는 "1960년대 프랑스 신좌파의 제3세계 담론"이었고, 페이퍼는 최근 성과물들을 바탕으로 지구사의 이론적 의의와 한계를 주제로 썼다.  과목은 8학점이었고, 페이퍼 점수는 1,0. 2. Kolonialgeschichte 1850-1920 (식민지사)  현대 독일 사회학자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하버마스의 따님이 괴팅겐 대학교에 사학과 교수로 계신데,그분이 하신 포어레숭. 하빌리타치온까지는 시민사회라는 정통적인 주제를 전공하신 분인데, 이후 최근에는 식민지사를 다루고 계신다. 본인이 직접 연구하는 분야이고 막 식민지사에 대한 신간도 내서 최신의 연구흐름을...

아우슈비츠로부터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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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에 폴란드에서 삼림학을 공부하던 한 학생은 아우슈비츠 근처에서 병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병 안에는 글씨가 지워져 단어 몇개를 제외하고는 해독이 불가능해진 종이 여섯 장이 들어 있었다.  발견 당시 문서의 모습 현대 그리스어로 쓰어진 문서에서 발견 당시 겨우 해독 할 수 있었던 것은, 글의 작성자가 존더코만도에 속했던 그리스 출신의 유대인 마르셀 나드야리 (Marcel Nadjari)라는 인물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유대인들로만 구성된 아우슈비츠의 존더코만도는 강제로 나치의 대량학살을 보조하는 일을 했다. 그들은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불러 모아야했고, 가스실의 시체들을 끄집어내야했다. 대략 2200명 정도가 존더코만도에 강제적으로 속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중 110여명 정도만 아우슈비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그런데 해독이 불가능했던 이 문서가 얼마 전 과학 기술의 힘을 빌려 복원됐다. 복원된 문서는 지난 10월 뮌헨의 현대사 연구소를 통해 공개 되었으며, 11월 중에 영어 번역본이 공개될 예정이다. 복원을 통해 나드야리가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자신이 아우슈비츠에서 목격한 바를 후대에 전하기 위함이었음이 드러났다. 나는 한글로 이 글을 번역해보고자 한다.  복원 후 문서의 모습 사랑하는  Dimitris Athan[asius] Stefanidis , Ilias Koen, Georgios Gounaris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동반자 Smaro Efraimidou와 내가 항상 기억할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항상 성실한 시민으로서 복무했던 나의 조국 그리스에게.   1944년 2월 차이다리(Chaidari)에서 한 달 정도 수용된 이후에 우리는 아테네를 떠나야 했다. 열흘의 이동기간 끝에 우리는 4월 11일에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후, 우리는 한 달 정도 동안 격리되었고, 그 후 그들은 ...

바이마르, 아 바이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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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오고나서 바이마르는 두 번 방문했다. 한 번은 작년 5월이었고, 그 다음은 올 해 8월 말이었다. 바이마르는 작은 도시라 왠만한 사람들이면 여러번 방문하지는 않을텐데, 나와 아내는 독일의 이 작은 도시가 가지고 있는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물론 바이마르는 나에게 있어서 또 다른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난 바이마르 공화국을 전공하고 있는 예비 역사학자니까. 바이마르 공화국의 비극적인 결말을 알고 있기에, 바이마르 기차역에서 내릴 때 마음이 한 번 무거워지고, 역에서 시내로 내려가는 길에 국립극장(Nationaltheater)을 지날 때 또 한 번 마음이 뒤숭숭해진다. 바이마르에 있는 국립극장은 1차세계대전 직후 베를린의 혁명적 분위기를 피해서 독일의 정치인들이 모인 곳이다. 이 정치인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독일 최초의 공화국의 헌법을 준비했을까. 그리고 14년 후 바이마르 공화국이 막을 내렸을 때, 이들은 바이마르에서의 시간을 어떻게 기억했을까. 바이마르에 들른다는 것은, 바이마르의 역사를 알고 있는 이에게는 필연적으로 어떤 불편함과 우울함을 느끼게끔 하는 행위이다. 바이마르와 바이마르 공화국은 그러나 어둠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독일 문화의 정수 중 하나인 괴테의 본거지였다는 것, 바이마르에 가면 괴테의 생가에 들를 수 있다는 것은 차치하고, 독일사에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도 한번은 들어봤을 바우하우스 양식 역시 바로 바이마르 공화국 당시에 바이마르에서 시작된 것이다. 지금도 바이마르 대학교의 공식 이름은 "바이마르 바우하우스 대학교" (Bauhaus-Universität Weimar)이다. 바우하우스 양식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나듯, 바이마르 공화국은 이렇듯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분기점에 놓여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독일의 역사학자 포이케르트 (Peukert)가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를 "고전적 근대의 위기의 시기" (Krisenjahre der klassischen Mo...

함부르크와 재외국민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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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월 말에 함부르크에 재외국민투표를 하기 위해 갔었다. 괴팅엔에서 버스로 4시간 좀 넘게 걸렸던 것 같은데, 기꺼이 갔다. 투표 앞뒤로 함부르크 여행도 하기 위해서 2박 3일로 갔었다. 숙소의 친절한 아주머니가 기억에 남고, 찾아찾아 들어간 초밥집에서 한국 쌀과 김을 식재료로 쓰는 것을 목격한 장면이 인상 깊었다. 이천 쌀이 맛있어서일까? 아니면 한국 쌀이 일본쌀보다 가격이 싸서? 어쨌든 가게 분위기는 정통 일식집으로 꾸며놨었는데, 뭐 독일 사람들은 재료가 한국껀지 일본껀지 알아볼리가 없을 것이다. 투표하고 나와서 포르투갈 음식점에서 먹은 식사. 괴팅엔에서는 해산물을 먹을 기회가 잘 없는데, 덕분인지 아주 맛있었다. 신혼여행 생각도 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