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마르, 아 바이마르!

독일에 오고나서 바이마르는 두 번 방문했다. 한 번은 작년 5월이었고, 그 다음은 올 해 8월 말이었다. 바이마르는 작은 도시라 왠만한 사람들이면 여러번 방문하지는 않을텐데, 나와 아내는 독일의 이 작은 도시가 가지고 있는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물론 바이마르는 나에게 있어서 또 다른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난 바이마르 공화국을 전공하고 있는 예비 역사학자니까. 바이마르 공화국의 비극적인 결말을 알고 있기에, 바이마르 기차역에서 내릴 때 마음이 한 번 무거워지고, 역에서 시내로 내려가는 길에 국립극장(Nationaltheater)을 지날 때 또 한 번 마음이 뒤숭숭해진다. 바이마르에 있는 국립극장은 1차세계대전 직후 베를린의 혁명적 분위기를 피해서 독일의 정치인들이 모인 곳이다. 이 정치인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독일 최초의 공화국의 헌법을 준비했을까. 그리고 14년 후 바이마르 공화국이 막을 내렸을 때, 이들은 바이마르에서의 시간을 어떻게 기억했을까. 바이마르에 들른다는 것은, 바이마르의 역사를 알고 있는 이에게는 필연적으로 어떤 불편함과 우울함을 느끼게끔 하는 행위이다.
바이마르와 바이마르 공화국은 그러나 어둠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독일 문화의 정수 중 하나인 괴테의 본거지였다는 것, 바이마르에 가면 괴테의 생가에 들를 수 있다는 것은 차치하고, 독일사에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도 한번은 들어봤을 바우하우스 양식 역시 바로 바이마르 공화국 당시에 바이마르에서 시작된 것이다. 지금도 바이마르 대학교의 공식 이름은 "바이마르 바우하우스 대학교" (Bauhaus-Universität Weimar)이다. 바우하우스 양식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나듯, 바이마르 공화국은 이렇듯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분기점에 놓여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독일의 역사학자 포이케르트 (Peukert)가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를 "고전적 근대의 위기의 시기" (Krisenjahre der klassischen Moderne)라고 규정한 것은 매우 날카로운 통찰이었다. 독일어에서의 위기(Krise)란 단순히 위태롭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으며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니까. 따라서 바이마르 공화국은 진정으로 근대에 머물고자 했던 자들, 근대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자 했던 자들 - 그것이 공산주의 혁명이든, 보수혁명이든 -그리고 과거로 돌아가고자 했던 이들 사이의 위기의 시기였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바이마르 공화국은 또다른 역사학자가 말했든, 근대성의 실험실이었다. 그 실험의 결과가 히틀러와 나치의 집권이었다는 사실은 역사학자가 짊어져야 할 영원한 슬픈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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