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 블로크(Marc Bloch)의 Les Rois Thaumaturges가 지니는 사학사적 의의에 관하여

 마르크 블로크(Marc Bloch)의 Les Rois Thaumaturges(이하 『기적을 행하는 왕들』)은 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로 하여금 일정한 낯설음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이러한 낯설음은 이 책이 기존에 근대 역사학에서 전혀 다루지 않았던 소재, 곧 중세에 왕이 행했던 연주창(scrofula) 치료 기적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가 낯설음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이 책이 비단 그 동안 다뤄지지 않았던 소재를 다루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소재의 성격에도 기인한다. 곧 왕이 연주창 환자들에게 손을 댐으로써 그들의 질병을 치료했다는, 현대인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일견 터무니없게 보이는 사건들의 역사를 저자가 다루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왕의 연주창 치료 기적을 다룬 저자의 이 책의 기본적인 구조와 함께 저자의 집필 동기에 대해서 살펴보고, 그 이후에 이 책이 그 자체로서 지니는 의의와 함께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책이 사학사적 맥락에서 지니는 의의에 대해서도 논할 것이다. 그 후에 최종적으로 오늘날의 역사학에 대해서 이 책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곧 이 책의 현재성에 대한 논의 역시 이루어질 것이다.

  『기적을 행하는 왕들』은 도입부에서 1340년 에드워드(Edward) 3세의 명을 받은 프란시스(Francis)가 베네치아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는 그곳에서 당시 프랑스의 왕위 계승을 노리던 에드워드에 대항하여 스스로 프랑스의 왕이라고 칭했던 발루와(Valois)에 대항하여 외교전을 펼쳤는데, 에드워드와 발루와 사이에서 진정한 왕이 누구인지를 가리기 위한 세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첫 번째 방법은 결투에 의한 것이었는데, 당사자 둘의 일대일 결투 혹은 여섯 명에서 여덟 명 사이의 단체 결투가 제시되었다. 두 번째 방법은 사자에 의한 해결책이었는데, 사자는 진정한 왕을 해치지 않는다는 믿음에 근거하여 왕을 굶주린 사자 앞에 노출시켜 놓자는 것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 방법은 ‘모든 진정한 왕들이 그러했듯, 아픈 환자들을 치료함으로써’ 스스로 진정한 왕임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견 단순한 외교적 수사로 간주되어 무시될 수도 있었을 이 사건이 바로 저자의 문제의식으로 이어지게 된다. 저자는 이 사건에서 나타난 세 가지 해결책을 당시 사람들의 ‘집단의식(la conscience collective)’이 반영 된 것으로 해석한다. 이후 책은 크게 세 개의 장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 장에서는 중세 중기 본격적으로 왕의 기적이 수행되기 전, 이러한 기적 수행들이 중세 초기에 어떠한 기원들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다. 분량 상으로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두 번째 장에서는 중세 중기 이후부터 프랑스와 영국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왕의 연주창 치료 기적과 이와 결부된 다양한 민간 신화들, 그리고 종교 개혁 이후 이러한 기적 수행이 쇠퇴하는 과정까지를 다룬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장에서는 이러한 왕의 기적 수행을 오늘날의 시점에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에 대한 비판적 해석이 이루어진다. 
  위에서 언급되었듯이, 이 책을 집필하게 된 저자의 동기 중 하나는 왕의 기적 수행에 대한 믿음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고 그것이 일종의 당시의 사람들 사이에서 일종의 집단의식을 이루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저자는 이어지는 도입부에서, 자신의 저작이 ‘넓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유럽 정치사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왕이 수행했던 기적에 관한 기록이 정치사의 영역으로 포섭될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중세 초기 왕의 권력 기반이 상대적으로 약했던 프랑스와 영국에서, 왕의 신성성에 바탕을 둔 기적 수행이 광범위한 대중의 믿음을 얻음으로써 왕의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는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곧, 왕의 연주창 치료 기적이 단순한 허황된 믿음에 머문 것이 아니라, 현실 정치에서 왕의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는데 기여했고, 이를 통해 현실 정치에서의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당시 사람들의 집단의식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러한 점-집단의식과 정치의 관계-은 얼핏 생각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뤼시엥 페브르(Lucien Febvre)와 함께 아날학파의 1세대에 속한다고 흔히 분류되는 블로크는 이 저작을 통해 집단의식에 대한 연구의 첫발을 내딛음으로써 근대 역사학에 있어서의 새로운 분야의 문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집단의식에 관한 연구는 후에 ‘역사인류학’과 ‘심성사’에 관한 역사가들의 연구로 이어지게 되었는데, 예를 들어 엠마뉘엘 르 루아 라뒤리(Emmanuel Le Roy Ladurie)의 『몽타이유: 중세말 남프랑스 어느 마을 사람들의 삶』(Montaillou, village occitan de 1294 a 1324)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블로크의 이 저작은 그러한 연구들의 출발점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점에서 블로크의 이 저작은 그것이 연구의 시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점에서 뒤이어 등장한 각종 역사인류학 혹은 심성사 연구들의 한계를 이미 뛰어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역사인류학에 가해진 비판 중 대표적이었던 것은, 역사인류학이 역사 속의 인간들로부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주체성을 소거시켰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몽타이유 마을에 관한 라뒤리의 연구를 생각해보자. 몽타이유 마을에 살고 있는 농민들의 경우에 관한 연구를 통하여 우리는 그들이 살고 있던 시대의 성, 결혼, 죽음 등, 기존에 역사학에서 상대적으로 소홀시 되었던 분야에 대한 관한 당시의 각종 인식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분명 값진 소득이다. 그러나 동시에, 몽타이유 마을의 이야기에 나타난 농민들은 역사의 주체로서 묘사되지 못한다. 그들은 마치 흘러가는 역사의 거대한 시간 속에서 하나의 정지화면 안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나타난다. 절대적 빈곤 속에서 그들이 자신들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등장하지만, 그들이 그러한 빈곤을 어떻게 변화시키려고 노력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생략되어 있다. 그리고 적어도 이런 의미에서, 몽타이유 마을에 관한 이야기는 정치사의 영역에 포섭되지 못한다. 
  그러나 마르크 블로크의 『기적을 행하는 왕들』은 이러한 측면에서 봤을 때 오히려 마르크 블로크 자신 이후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역사인류학의 전통적 약점을 넘어서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은 왕의 신성성을 믿고 그의 연주창 치료 능력을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동시에, 이 책에서는 그러한 집단의식이 종교개혁의 등장과 함께 어떻게 서서히 무너지는지에 관한 논의가 함께 이루어진다. 그리고 왕의 기적 수행 능력에 대한 집단적 믿음이 종교개혁과 함께 지식인 계층으로부터 시작해서 서서히 무너지지만, 그러한 믿음이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급작스럽게 붕괴하지 않고 생명력을 유지하는지에 대한 서술 또한 함께 이루어진다. 곧,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집단의식의 소멸과 생존 사이의 역사적 긴장 관계를 포착하게 한다. 그리고 이 점에서, 이 책은 또 다른 의미에서 정치사, 곧 변동과 변혁으로서의 정치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세 가지 차원에서의 정치사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에 해당하는 것은 기존의 전통적인 정치사로서, 주로 국가끼리의 외교, 국가 내에서의 지배세력의 변화, 그리고 국가 제도의 변화 등을 다룬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사는 주로 그것이 다루는 지역적 단위 내에서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왕조의 변화, 외교 관계의 변화, 정책의 변화, 국가 영토의 변화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이 일찍이 지적했듯이, 인간의 역사에는 이러한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유지되는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 어느 한 시점에 프랑스의 특정한 왕이 죽어도, 당대를 살아가고 있는 프랑스 일반 민중의 삶에 있어서의 근본적인 심성(mentalite)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에 종속되지 않고 계속해서 유지되는 것들, 곧 ‘장기지속(la longue duree)’의 영역에 속하는 것들이 바로 블로크를 비롯한 프랑스 아날학파의 관심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봤을 때, 이 책이 수세기에 걸쳐 형성되고 유지되어온 왕의 치료 기적 수행에 대한 일반 민중의 믿음을 다룬다는 점에서, 비록 장기지속이라는 개념은 블로크의 후세대에 속하는 브로델이 고안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블로크의 이 책에서 그 잠재적 싹이 트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블로크의 『기적을 행하는 왕들』이 그 이후에 등장하는 아날학파와 역사학 전체에 끼친 영향은 이러한 장기지속 개념에 대한 암시적 이해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이 짧은 글에서 그 모든 것들을 다룰 수는 없겠지만, 몇 가지 점만 살펴보더라도 그 풍부한 유산을 인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블로크는 『기적을 행하는 왕들』의 제 3장에서 왕의 기적 수행에 대한 비판적 해석을 시도하는데, 블로크는 이 부분에서 당대에 왕의 기적 수행을 비판하는 지식인들의 모습을 소개한다. 그 중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당대에 왕의 기적 수행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던 지식인들의 경우 역시도, 왕의 치료 능력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왕의 치료 능력 자체를 의심하거나 부정하는 대신에, 왕의 치료 능력을 왕의 ‘초자연적’ 능력에서 찾는 것을 부정하고 이러한 치료 능력이 ‘자연적’ 범위 내에서 설명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블로크는 당대 지식인들의 “비판적 정신(l’esprit critique)”이 아직 왕의 치료 능력 자체를 부정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이르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함의를 지니는데, 이러한 주장은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개별 인간들에게 있어서 각자의 시대 속에서 넘어설 수 없는 ‘구조’가 있음을 강하게 암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는 페브르가 이후 『16세기의 무신앙 문제 : 라블레의 종교』에서 주장하는 핵심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페브르가 이 책을 통하여 말하고자하는 핵심은 16세기에 있어서 ‘무신앙’과 ‘무신론자’가 의미하는 것은 오늘날의 그것과는 다르며, 당시의 인식틀에서 오늘날과 같은 무신론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한 시대의 인간들이 사고함에 있어서 가지고 있는 구조적 한계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역사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블로크도 일찍이 말했듯이 이를 통해서 역사가가 범할 수 있는 최대의 오류, 곧 ‘시대착오’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역사학적인 사고와 이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이해 방식이 블로크의 이 책에서 강하게 암시된다는 점 또한 이 책이 지니는 역사학적 의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의미의 정치사는 자크 르 고프(Jacques Le Goff)가 이 책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정치역사적 인류학(l’anthropologie politique historique)’으로 분류될 수 있는 것들이다. 정치역사적 인류학은 앞에서 논의된 전통적인 의미의 정치사와 비교했을 때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살펴봄으로써 보다 더 적절하게 이해될 수 있다. 우선 차이점을 살펴본다면, 무엇보다도 두 역사서술이 다루는 소재의 차이가 가장 눈에 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정치사 서술에서는 위에서 논의되었듯 주로 왕조의 변화, 외교 관계의 변화, 정책의 변화 등과 같은 소재들이 다루어진다. 이와 대조적으로, 『기적을 행하는 왕들』에서 볼 수 있듯이 정치역사적 인류학에서는 ‘왕의 기적 수행에 대한 일반인들의 믿음’과 같은, 얼핏 보기에는 정치사와는 관련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소재들이 다루어진다. 그러나 독자들이 처음 이 책을 봤을 때 할 수 있는 생각과는 달리,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일반인들의 믿음은 그것이 바로 ‘정치권력’과 연계됨으로써 ‘정치역사적’ 인류학이 된다. 곧, 일반인들의 왕에 대한 믿음이 왕의 권력을 유지시키고 그것이 왕권의 안정화에 기여함으로써, 이러한 믿음은 단순한 미신은 넘어서서 정치사의 영역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블로크는 이것을 왕의 연주창 치료 기적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지는 시기를 분석함으로써 설명하는데, 프랑스와 영국에서 각각 왕권의 기반이 약하거나 정통성이 약할 때 이러한 기적 수행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이 바로 전통적인 정치사와의 공통점이라는 맥락 속에서 살펴질 수 있는 점이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정치사에서는 왕의 권력이 약할 때 왕이 어떠한 법을 제정하고 어떠한 외교관계를 수립해 나가는지와 같은 맥락에서 왕권의 강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시도할 수 있다면, 정치역사적 인류학에서는 이것을 왕의 신성성에 대한 일반 민중의 믿음이라는 차원에서 분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자와 후자는 소재로는 다른 차원에서 분석을 시도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곧 존재론적 차원에서 권력의 변화이며, 적어도 이 점에서 전통적인 정치사와 정치사적 인류학은 그 궤를 같이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둘을 통해 우리는 정치사 일반에 대한 조금 더 포괄적인 논의를 할 수 있게 되는데, 그것은 곧 앞에서 살펴봤듯이 정치사란 권력을 매개로 한 ‘변화’를 다룬다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전통적인 정치사에서의 소재들이란 지배층의 교체, 국가의 정책, 그리고 국가 간의 외교 관계와 전쟁 등과 같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더 적확하게 말하자면, 전통적인 정치사에서 이러한 소재들을 설명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소재들이 어떻게 ‘변화’를 겪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변화가 권력의 존재론적 차원에서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해명하는 것이다. 근대 이전의 왕조변화와 근대 이후 혁명을 통한 지배층의 변화는 어떠한 점에서 차이점을 지니는지, 경제 정책에 있어서 어찌하여 특정한 시기에 중상주의에서 자유방임주의로의 전환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독일의 존재를 상수로 한 영국과 프랑스의 외교 관계가 시기에 따라 어떻게 다른 양상을 보이는지, 이와 같은 것들이 전통적인 정치사에서 해명을 요하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기적을 행하는 왕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도 궁극적으로는 전통적인 정치사와 같은 맥락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 책은 중세에 걸친 왕의 연주창 치료 기적 수행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저자는 오히려, 이러한 왕의 연주창 치료 기적 수행과 그에 대한 일반 민중들의 믿음이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하였으며 이후에 쇠퇴하였는지를 논의하고, 이를 토대로 당시 전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일반 민중의 심성에 대한 이해를 시도한다. 그리고 이들의 심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시 이러한 민중의 심성이 어떻게 권력의 차원, 즉 신성성을 기반으로 한 왕권의 강화에 기여했는지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이러한 요소들의 함수관계는 다시 수세기에 걸친 역사적 시간 속에서 변화의 과정을 통해 분석된다. 이를 통해 왕의 연주창 치료 기적 수행에 대한 일반 민중의 믿음은 단순한 미신의 차원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으로 승화된다. 르 고프는 서문에서 이 책을 일컬어 ‘정치역사적 인류학(l’anthropologie politique historique)’의 첫 번째 모델이라 일컫고 있지만, 지금까지 논의한 바를 토대로 살펴본다면 이 책을 그보다는 오히려 ‘인류학적 정치사’의 원형으로서 이해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 책을 이렇듯 정치역사적 인류학이 아니라 인류학적 정치사로 분류하여 이해할 경우, 이 책의 의미에 대한 더욱 더 풍부한 해석이 가능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양자의 구분이 어떠한 면에서는 인위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인위성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인식틀을 매개체로 삼아 어떤 특정한 대상을 살펴볼지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어떤 감각기관으로 세계를 인식하느냐에 따라, 인식되는 세계 자체는 같을지언정 인식되는 구체적 양상은 전혀 달라지는 것과도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을 이해함에 있어서 ‘인류학’에 그 최종적 방점을 찍을지, 혹은 ‘정치사’에 그 최종적 방점을 찍을지는 매우 중요한 차이를 가져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자와 같이 이해하는 것도 나름의 의의를 분명히 지니고 있다. 왕의 기적 수행에 대한 일반 민중의 믿음을 인류학적 차원에서 분석하게 되면, 오늘날의 현대인이 보기에 터무니없는 미신에 불과한 현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가능하게 된다. 인류학적 차원에서의 왕의 기적 수행에 대한 접근 방식은, 그것이 왕의 기적 수행에 대한 자세한 묘사와 일반인들의 그것에 대한 믿음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상세하게 보여주되, 그것에 대한 오늘날의 관점에서의 가치평가는 철저하게 배제한다. 이러한 가치중립적 이해를 통해 오늘날의 독자들은 당시의 일반 민중들이 어떠한 심리학적 메커니즘을 통해 왕의 기적 수행에 대한 믿음을 형성하고 유지, 발전시켜 나갔는지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인류학적 이해 방식이 독자로 하여금 이러한 현상을 얼마만큼 ‘오늘날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고 할 수 있다. 몽타이유 마을에 대한 라뒤리의 연구가 바로 이러한 예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데, 라뒤리의 연구는 기존에 일반적인 독자들이 지니고 있던 중세에 관한 일반적인 이해가 13세기 몽타이유 마을의 경우에 있어서는 상당부분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라뒤리의 연구는 몽타이유 마을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근대 세계로 편입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한다. 아니, 라뒤리의 연구는 애초에 그러한 설명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는 몽타이유 마을의 사례를 온전하게 ‘타자화’시켜서 가치중립적으로 분석한다.  
  그러나 블로크의 『기적을 행하는 왕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인류학적 방법을 도입하면서도 후세대의 저작에 속하는 『몽타이유』와는 차이를 보이는데, 그것은 전자가 연구 대상에 대한 가치중립적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변화의 맥락, 곧 역사의 맥락 속에서 분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블로크는 현대의 독자로 하여금 중세의 단순한 미신으로 치부될 수 있는 현상을 가치중립적으로 판단하게끔 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믿음이 어떻게 시간을 겪으며 변화의 과정을 겪었고 그에 따라 역사의 물결 속에서 합리주의의 등장과 맞물려 쇠퇴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하여 블로크는, 비록 자신이 책을 통해 다루는 소재와 시기가 중세에 속하는 것일지언정, 그것이 어떻게 변화하여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해명을 시도한다. 이러한 방식은 이해의 대상을 온전하게 ‘타자화’ 시켜 가치중립적으로 살펴보되, 그것을 이해함에 있어서 오늘날의 관점 또한 완전하게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역사학적인 차원에서 봤을 때 『기적을 행하는 왕들』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의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우리로 하여금 최종적으로 오늘날의 역사학, 그 중에서도 오늘날의 정치사에 대한 고민을 하게끔 만든다. 정치사는 고대 시기 그리스에서는 헤로도투스(Herodotus)의 『역사』, 중국에서는 사마천의 『사기』로 시작하여 19세기 독일 역사주의(Historismus)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항상 역사학의 주인공으로서 자처했다. 그러나 역사주의에 대한 반성적 성찰에 기초하여 발전한 20세기 이후의 프랑스 아날학파는 기존의 정치사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지리적, 환경적,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요인 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역사학의 헤게모니를 손에 쥐었다. 물론 아날학파에 속하는 다양한 역사가들의 역사관을 일반화 시켜서 규정하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아날학파의 역사관은 브로델의 장기지속이라는 개념으로 대표되어 끊임없이 인간의 한계를 규정하고 역사를 결정론적 관점 하에서 이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러한 비판에 대하여 브로델 자신은 수차례에 걸쳐서 인간의 한계를 규정하는 것이 역사의 흐름에 있어서 인간이 가지는 주체성을 소거 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많은 이들에게 그러한 항변이 그다지 설득력을 지니지 못했다는 점 역시 사실이다. 오늘날의 이러한 사태에 직면하여, 아날학파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블로크의 역사세계를 다시 한 번 살펴보고, 그가 『기적을 행하는 왕들』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바를 다시 한 번 오늘날의 관점으로 성찰적으로 논의하는 것은 나름대로 분명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위에서 살펴봤듯이 역사학의 소재와 범위를 계속해서 확장해 나가는 동시에, 역사학이 담당하고 있던 본래의 임무 또한 저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블로크의 『기적을 행하는 왕들』이 지니고 있는 최대의 의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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