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화사의 관점에서 본 선물의 역사

차르 표트르 1세가 임무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시동에게 수고했다며 금을 선물하려고 한 적이 있다. 이에 아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황제의 시동은 돈으로 된 선물은 받지 않습니다. 이는 황제의 명예를 위해서입니다." 이 말에 감명을 받은 표트르 1세는 장차 황제의 명예를 열심히 수호하라며 보검을 선물했다.

비슷한 시기 프랑스의 궁정에서는 반대의 일이 일어났다. 중요한 계약을 위해서 네덜란드에서 파견된 대표단이 계약을 마치고 돌아가려고 하자, 리슐리외는 대표단에게 왕으로부터 하사되는 이별선물로 보석을 받을지 은접시를 받을지 선택하라고 말했다 (당시 프랑스 궁궐에서는 떠나는 이에게 의례 둘 중 하나를 선물로 줬다). 프랑스에서 남겨진 기록에 의하면, 네덜란드의 대표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프랑스 쪽 기록이기 때문에 3인칭 시점이다). 
"qu'il leur seroit plus commode de leur recevoir en lettres de change, pour en toucher la valeur a Amsterdam".

"암스테르담에 돌아가 돈을 받아갈 수 있도록 수표로 선물을 받을 수 있다면 더 편리할 것이다".
이 재미있는 일화 (네덜란드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는 독일의 역사가 슈톨베르크-리링거(Stollberg-Rilinger)가 17-18세기 유럽 궁정의 선물 문화를 분석하는 텍스트 서두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그녀는 유럽 초기 근대의 상징 의례 연구를 선도하는 연구자이기도한데, 이 텍스트에서는 상징 의례 연구의 연장선상에서 선물 문화를 분석하고 있다. 위의 두 사례, 특히 첫 번째가 단순히 예의상의 겉치레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 뒤, 작가는 그와 같은 인식의 배경에 숨어있는 '윤리적 경제 (moralische Ökonomie)'를 분석해 나간다. 선물이 윤리적 경제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물질적 가치로서의 선물 그 자체가 아니라 선물을 하는 자와 선물을 받는 자가 선물에 부여하는 '의미'이다 (이 지점에서 이 연구는 신문화사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때, 초기 근대의 선물이 만들어내는 여러 의미들을 결정적으로 특징 지우는 것은 선물이 '상호적'이면서도 '비동시적'이라는 점이다. 선물을 받은 자는 선물을 한 자에게 일종의 빚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이는 이후에 후자에게 어떤 식으로든 빚을 갚아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초기 근대의 경우 '선물'과 '구매', 그리고 특정 임무의 대가인 '보상'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예를 들어 귀족이 왕을 위해서 특정한 임무를 처리해 줄 경우, 귀족은 왕으로부터 어떠한 보상을 받을 것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월급날짜가 정해져 있는 오늘날의 우리 사회와는 다르게 당시에는 보상이 언제 주어질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왕이 사망할 때까지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이런 경우 왕의 평판이 나빠지고, 이는 이후 귀족들의 충성심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역으로 왕이 뜬금없이 특정한 귀족에게 선물을 할 경우 (슈톨베르크-리링거는 이를 자의적 willkürlich 선물이라고 이름짓는다), 선물을 받은 귀족은 왕에게 기존에 해왔던 것 이상의 충성을 해야할 당위를 부여받게 된다. 슈톨베르크-리링거는 선물의 다양한 양상들을 경우에 따라 분석하는데, 1. 동등한 지위를 지닌 인물들 사이의 선물, 2. 왕과 귀족 관계에서의 선물, 3. 귀족이 자신의 부하들에게 주는 선물, 4. 왕의 다른 국가의 왕이나 영주로부터 온 대사에게 주는 선물 등이 대표적이다. 각각의 양상은 비슷하면서도 중요한 차이점들을 지닌다. 예를 들어 세 번째의 경우는 두 번째의 경우보다 선물 혹은 보상이 훨씬 정기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이 신분이 낮을수록 정기적인 선물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여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세 번째 사례의 경우 선물과 보상의 경계가 명확해진 근대 이후의 임금제도와 이어져있다는 점 역시 이후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맥락이 된다.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귀족이 왕으로부터 선물을 (간접적으로, 혹은 눈치를 통해서) 보채는 것은 단순히 예의의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의 권위와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었을 것이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자신의 물질적 자산이 약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고, 스스로를 귀족 아래의 이들과 동치시키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선물의 비동시성은 특히 당시의 복잡하고 섬세한 궁정문화와 결합됨으로써 독특하면서도 섬세한 문화인류학적 맥락을 지니게 되고, 이는 결국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선물 제도가 궁정문화 그 자체와 함께 붕괴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상호 불평등에 기초한 섬세한 '차이지음'이 근대 이후의 사회와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텍스트를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역사학과 신문화사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신문화사에 대해 쏟아지는 많은 비판들에도 불구하고, 신문화사만이 밝혀줄 수 있는 영역이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그 영역은 결코 작거나 의미없는 영역이 아니다. 오히려 과거를 살았던 사람들의 세계관과 '이해의 틀(Deutungsmuster)'을 통해 과거 자체를 이해하고자 시도한다는 점에서 신문화사는 지극히 역사적이고도 역사학적인 방법론이다. 이런 방법론과 문제의식에 충실한 신문화사 연구는 미시사라고 폄하할 수도 없다. 제대로 된 미시사 연구는 미시적인 것을 통해서 보편적인 것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시사와 신문화사의 가면을 쓰고 소위 '실증'적 연구에 몰두하는 이들이지만, 거대 담론과 이론의 이름을 빌려 실상은 변변치 않은 일을 하면서도 큰소리를 내는 사람들이야 언제든지 있는 법이다. 이는 이론과 실제 적용의 문제이지, 이론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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